루이비통이란 명품을 알아?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노그램의 symbol 문양이다. 카메라백, 미니 크로스백, 쇼퍼백. 스카프. 의류 등 다양한 아이템에 도배되어 있는 문양은 진품과 가품 사이를 넘나들며 브랜드임을 드러낸다. 짝퉁 1위라는 명성도 어떻게 보면 브랜드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도가 반영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위작을 막기 위해 만들어 낸 다양한 모노그램의 symbol이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되는 시장에서, 본연의 가치를 이어나간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소비자들도 가짜 명품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기보단 애장 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진짜를 자랑할 수 있길 바란다.
루이 비통의 탄생
루이 비통은 1835년 프랑스 시골마을 쥐라주에서 노동 계급의 부모에게서 출생한다. 14살이 되던 1983년 루이 비통은 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유명한 트렁크 및 케이스를 제작하는 마르샬(Marechal)의 견습공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부유층들의 짐 싸는 일을 도와주게 된다. 당시 그들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갈 때 300벌 이상의 옷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옷들을 구겨지지 않게 잘 싸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루이 비통은 이 일을 잘해 내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며, 나폴레옹 3세의 황후(외제니 드 몽티조)의 짐을 전담 관리하며 인정을 받게 된다. 그 후, 황후의 후원으로 1854년 파리 중심가인 네브 데 카프신느(Neuve-des-Capucines) 거리에 본인의 이름을 간판으로 첫 매장을 오픈한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 운송의 발전이라는 현대적 개념 안에서 품격 있는 여행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다. 수납공간과 서랍을 구비한 옷장 역할을 하는 트렁크,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낭을 위해 맞춤 제작한 드브라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책 수납 트렁크 등 스페셜 오더에 의한 특별 맞춤제작도 했다.
성장한 사업은 1859년 아버지의 창조적인 역량을 이어받은 조르주 비통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는 1867년 파리 박람회에서 동메달 획득,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금상을 수상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인기가 높았던 만큼 모조품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스트라이프 패턴: 루이비통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직사각형 트렁크를 다른 업체에서 따라 만들게 되면서 희소성에 문제가 생기자 최초의 그래픽 요소를 넣은 빨간 스트라이프 트렁크를 출시한다.
-다미에 패턴: 1888년 브라운과 베이지 스퀘어가 교차하는 체크 사이에 루이비통의 자수를 새겨 넣어 최초로 상표등록을 하게 된다.
-모노그램 패턴: 스트라이프에 이어 다미에까지 다른 업체에서 따라 하자 조르주 비통은 아버지 이름의 이니셜 LV와 꽃과 별을 모티브로 이루어진 독창적인 모노그램을 만든다. 19세기의 자연 형태에 일본 판화 등에서 유래한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자타 공인 루이비통의 시그니처 패턴이 된다.
-텀블러 자물쇠: 여행용 트렁크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하여 특허를 받는다.
루이 비통과 조르주 비통이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루이비통을 이끌었다면 3대에 이르는 가스통 비통은 이러한 디자인을 전략적인 상품라인으로 확장해 나간다. 골동품과 빈티지 제품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던 가스통은 루이비통에 이런 감각을 녹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족 경영의 한계에 부딪힌 루이비통은 1987년 샴페인과 코냑 제조회사인 모에 헤네시(Moet Hennesy)와 합병하여 LVMH를 설립한다.
마크 제이콥스
1963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마크 제이콥스는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지내며 바느질 배우기를 좋아한다. 15살에 '샤리바리'의 창고에서 물품을 관리하다가 우연히 디자이너 펠리 엘리스(Perry Ellis)를 만난 것을 계기로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81년 아트 앤 디자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슨스 스쿨에 입학한다. 그 후 졸업 출품 컬렉션에서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Perry Ellis 황금 골무상을 수상한다.
1986년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60년대 히피 스타일과 패치워크 등을 응용한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CFDA 상을 수상한다. 1989년에는 Perry Ellis 컬렉션에서 활동하며 1992년 CFDA 여성복 디자이너 상울 수상한다. 바로 그해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그를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여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젊은 감각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낼 적임자로 그가 낙점된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작품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스티브 스프라우스와의 콜라보로 그라피티 버전과 장미 버전을 형광컬러의 펑키한 컨셉으로 선보였고,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로 루이비통 모노그램에 33가지 컬러를 입혀 전통에 활기를 부여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일러스트 작가 줄리 버호벤, 리처드 프린스, 쿠사마 야요미 등과도 콜라보레이션을 이어 나갔다. 마크제이콥스의 루이비통은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 문화의 속성을 완벽하게 소화시키면서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선보였으며 상업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 했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정체성
루이비통의 변하지 않는 본질, 아이덴티티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대중들이 인지하는 루이비통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여행가방, 상징적인 로고와 패턴, 고가의 명품, 매출 1위 브랜드 등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가 그 이름을 180년 넘게 유지하면서 정체성을 지켜 나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수시로 변하고 시대적 유행은 브랜드를 흥하게도 하지만 자기만의 고집을 고수하다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역사의 기억에서 지워지곤 한다. 루이비통도 한때 정체된 브랜드로 인식되어 힘든 고비를 맞이하지만 합병과 도약이란 선택으로 그 명맥을 이어나가게 된다. 정체성이란 뿌리를 단단하게 중심에 놓고, 시대적 관심과 이슈를 접목시켜서 브랜드에 젊음을 수혈하는 방식으로 크기를 키워 나간다. 그 위에 천재적인 수석 디자이너들의 창조적 사고가 덧입혀졌고 LVMH의 상업적인 푸시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특별 주문 제작을 하는 '아르니에' 공방은 무두질 과정에서 어떤 화학 소재도 사용하지 않고 가죽의 질을 유지하며 나폴레옹 3세 시대부터 사용해 온 기술과 도구를 여전히 사용하는 장인들의 수작업 공간이다. 루이비통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진정한 명품이라고 하고 싶다.